나의 은밀한 도시
오랜 기간 명절은 거의 혼자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미 안 계셨고, 부모님이 휴일 없는 가게를 한 후로 명절 때 시골을 내려가거나 함께 모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어렸을 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건 일종의 버티기였다. 연휴 마지막 날 쯤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날만 기다렸다.
대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혼자 어디든 갈 수 있게 되면서 명절은 완전히 다른 날이 되었다. 여전히 텅 빈 집이었지만, 텅 비어서 좋았다. 집도, 길도. 연휴 첫날, 모두들 지방으로 가족을 만나러 간 그때 나는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어가곤 했다. 특히 경복궁역에서 광화문을 보고 똑바로 걷다가 광화문 광장이 나올 무렵 우회전할 때를 좋아했다. 차도, 사람도 거의 없어 탁 트인 광화문 전체를 보고 있으면 서울이 모두 내 것 같아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연휴 첫날에 광화문 걷기는 갈 곳이 아무 데도 없는 나만 할 수 있는 작은 의식이었다.
연휴가 시작된 교보문고에는 나처럼 어딘가 갈 필요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취향대로 마음껏 조용한 분위기를 즐겼다. 한 번은 영어소설을 뒤적거리다 또래의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와 한참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마법이라도 부린 듯 사람이 사라진 서울에서는 평소에는 일어나지 않을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텅 빈 서울을 혼자 본 기분을 해치고 싶지 않아 명절 당일과 마지막 날은 사람들이 적어진 밤늦게만 외출을 하곤 했다. 명절 첫날의 서울을 나 혼자만 알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길 몇 년이었는지 모른다.
2019년 추석 연휴의 첫날, 오늘도 경복궁역을 찾았다. 몇 년 간 학습되어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기 전부터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고요한 플랫폼에 두 명 정도 있었던 수년간의 풍경을 기대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한 눈에도 2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다. 역 출입구를 나서기까지 거의 주말과 같은 인파를 보며 광화문만은 한적할지도 모른다는 무의미한 소망을 가졌다.
경복궁역부터 광화문까지, 한복을 입고 삼삼오오 걷고 있는 사람들로 길이 좁게 느껴졌다. 짜릿한 기분으로 우회전하던 광화문 광장 초입은 주말처럼 붐볐다. 대다수가 관광 중인 외국인이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광화문광장을 차지하고 서울을 즐겼다. 한산했던 서울은 원래 없던 것처럼.
사실 몇 해 전만 해도 명절 첫날 광화문을 걸으며 (쓰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대부분의 사람이 죽고 나를 포함한 소수의 살아남은 사람만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의 광화문엔 나 포함 세상 좀비가 다 뛰쳐나온 것만 같았다.
관광객들을 위해 광화문광장을 비워준 서울 사람들은 모두 교보에 있었다. 장사에도 풍년이란 말을 쓸 수 있다면, 오늘의 교보에는 꼭 그 말을 붙여야 한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졌던 때가 있긴 했던 걸까. 계산대에는 몇 겹으로 줄을 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간 그랬듯 여유 있게 교보를 배회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비어있는 서가가 거의 없어 나는 두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경복궁역부터 광화문광장, 그 한적하고 사적인 산책코스를 즐기고 난 후 교보에서 작은 노트와 책을 사고, 쉬엄쉬엄 걸어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게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내 명절 의식이었는데, 오늘은 그냥 교보를 나와 카페도 가지 않고 왔다. 영원할 줄 알았던 내 은밀한 서울은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명절에만 남의 결혼과 취직을 궁금해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연휴가 피곤했다는 친구들을 보며 언젠가 친구들도 명절을 나처럼 보낼 수 있길 바랐다. 내가 너무 아끼는 나머지 혼자만 알고 싶었던 명절의 서울이 다른 사람에게도 하루쯤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전을 부치고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던 친구들이 정말로 휴일을 즐기게 되었다면, 그래서 서울이 모두의 사적인 도시가 되었다면, 혼자 가졌던 서울을 양보해야지.
그래도 너무 아쉽다. 내 것만 같았던 서울에서 부리는 사치, 그거 일 년에 고작 이틀이었는데.
written by. 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