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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프로산책러 일기LETTER 2020. 1. 8. 14:20
VOL. 3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어떤 것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 교육 과정으로 채택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 선생님들께선 억울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수능이 수많은 문학 작품의 재미를 앗아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제일 안타까운 작품을 꼽자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아닐까 해요.
실제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2008년 평가원 모의고사에 출제되었어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죠?
비유하자면, 어느 괴랄한 과학자가 맛있는 치킨을 색깔, 향, 양념, 껍질, 살코기, 뼈 등으로 분리한 거에요. 그러고선, 씨익- 웃으며, 각각 다른 그릇에 담아 보여주는 거죠. “이게 바로 맛있는 치킨이야.”
그래서 오늘의 레터는 실험실에서 해체되지 않은, 온전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찾는 것에 방점을 찍어볼까 해요.
* 주의: 이 글에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기본반
# 프로산책러
작품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소설가인 구보씨가 하루종일 돌아다닌 이야기에요. 낮 12시에 집에서 나와 새벽 2시까지. 무려 12시간 동안 경성 곳곳을 구경했어요. 이 정도면 프로산책러라고 할 수 있겠죠?
구보씨라고 하니까 나이가 굉장히 많을 것만 같은데, 실은 그냥 동네형이에요. 나이는 26살. 좀 특별한 게 있다면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공부 좀 하는 동네형인 거죠.
우리의 동네형 구보씨는 백수에요. 하긴, 백수가 아니고서야 12시간을 돌아다닐 시간이 없겠죠. 여자친구? 당연히 없어요. 주변에선 그를 소설가라고 부르긴 하는데, 스스로 소설가라고 말하기엔 살짝 그렇고 그런 상황이에요. 가끔 신문에 잡문을 기고할 때도 있지만, 제대로 돈을 버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쏠로인 동네 백수형, 26살 구보씨가 하루 종일 돌아다닌 이야기에요.
#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프로산책러의 동선: 집-화신백화점-조선은행-다방(낙랑파라)-남대문-경성역-다방(제비다방)-술집(엔젤카페)-집
참 많이도 다녔죠? 구보씨는 경성 곳곳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는데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 사실 이 소설에선 구보씨가 찾아간 ‘장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바로 구보씨가 관찰하고 기록에 남길 ‘사람'이에요.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의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p.114)
구보씨는 서울 구경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이 보고 싶었던 거에요.
그는 그 목적대로 경성에 사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자신과 1년 전에 소개팅했던 여자부터 이제는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초등학교 친구, 병자, 금광으로 떼돈을 번 사람, 신여성, 기자가 된 시인 친구, 다방 주인인 친구, 카페 여급까지.
그의 좌우에는 좌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두 칸통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 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p.115)
구보씨가 그날 관찰한 사람들의 ‘인생'을 생생하게 묘사해둔 덕분에, 2019년에 사는 우리도 1934년의 경성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것이죠. 지금에서야 별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시엔 대부분의 소설이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는 건 무척 새로운 시도였어요.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걸 고현학(modernology)라고 하는데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한국 고현학의 시초이자 조상님 대부쯤 되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요!
# 경성의 댄디보이
소설의 주인공 구보는 작가인 박태원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할 수 있어요. 박태원의 호가 구보이고, 당시 나이가 소설 속 구보와 마찬가지로 26살이었어요. 일본 유학을 했다는 것도, 직업이 소설가 혹은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것도 같아요. 동일인물이에요.
교과서에서 봤던 박태원의 사진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난해한 헤어스타일과 동그란 안경. 박태원은 경성에서 꽤나 유명한 인사였는데, 그 이름을 알리는데 패션도 한몫했어요.
호감은 말도 말고 지극한 악의조차 가지고서 나의 머리를 비난하고 한걸음 나아가서는 나의 사람됨에까지 논란을 캔 이조차 있었다.
어떤 이는 내가 남다른 머리모양을 하고 다니는 것을 무슨 일종의 자가선전을 위한 행동같이 오해하고, 신문 잡지 같은 기관을 이용해 대부분이 익명을 가지고 나를 욕하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 박일영
지금 보기에도 꽤나 난해한 헤어스타일이니, 당시의 기준에선 더욱 그랬겠죠. 박태원이 쓴 동그란 안경도 데모테라 불리는, 당시 경성에서 가장 유행하던 스타일이었어요.
갑빠 머리에 잇템 안경까지 썼으니, 박태원은 어딜 가든 눈길을 끌었던 패션 인싸, 당시 용어로 ‘댄디보이'라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박태원은 일본 유학파.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시절에 대학교까지, 그것도 일본에서 다녔으니 상당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시 용어로 말하자면, ‘인텔리'인 것이죠.
2. 심화반
#예나 지금이나 청년실업
아들은 지금 세상에서 월급 자리 얻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보통학교만 졸업하고도,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회사에서 관청에서 일들만 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불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해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p.93)
답은, 구보씨가 아니라 구보씨가 살던 1934년 경성에서 찾을 수 있어요.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대폭락하며 세계대공항이 터졌고 그 여파는 태평양 건너 경성까지 닿았어요. 경제 위기로 일자리가 줄었고,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된 거죠.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됐고, 급기야 취업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일본인들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조선 사람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이 백수 지식인을 조롱처럼 부르던 말이 ‘룸펜'이에요. 요즘 말로 치자면 ‘잉여'쯤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댄디보이에 인텔리인 구보씨도 ‘룸펜' 처지일 수밖에 없었어요.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는 자연히 룸펜의 실업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는데요, 국어시간에 꼭 배우는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글쎄올시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주십사고 무리하게 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면 이 담에 결원이 있다든지 하면 그때는 꼭……."
이렇게 말하고 P는 지금까지 외면하였던 얼굴을 돌리어 K사장을 조심성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K사장은 우선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렇게 나나 어데…… 그러고 간혹가다가 결원이 난다더래도 유력한 후보자가 몇십 명씩 밀려 있어서……."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 가난한 소설가와 가난한 시인
할 일 없는 룸펜들은 경성을 의미 없이 배회하거나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하루를 때우곤 했어요. 당시의 다방은 차를 팔던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었는데요. 지금의 카페보단 살롱에 가까워요. 차를 마시며 예술과 문학을 논했던 복합문화공간쯤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도 다방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요, 구보씨와 함께 다방을 돌아다니는 벗이자 ‘다방 주인인 친구'가 바로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라는 난해한 시를 남긴 시인 이상이에요.
이 시대에는 조그만 한 개의 다료를 경영하기도 수월치 않았다. 석 달 밀린 집세. 총총하던 별이 자취를 감추고 하늘이 흐렸다. 벗은 갑자기 휘파밤을 분다. 가난한 소설가와, 가난한 시인과...... 어느 틈엔가 구보는 그렇게 구차한 내 나라를 생각하고 마음이 어두웠다.
(p.147)
박태원과 이상은 구인회 활동으로 이름을 날린 경성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인데, 절친한 사이로 유명했어요.
단짝 박태원이 결혼을 하자, 이상이 “구보, 여보게, 결혼은 하더라도 이 둘도 없는 친구 버리지 마시게……”라 말했다고 전해질 정도에요. 현실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희노애락을 나눈 진짜 '벗'이었던 거에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이상이 손수 삽화를 그려줬어요
# 2등 시민의 삶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경성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음울한 느낌이 서려 있어요. 작품의 배경이 그냥 경성이 아니라, ‘식민지 경성’에 사는 ‘조선인의 삶'을 조명했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구보는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 관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실로 다수의 정신병 환자가 그 안에 있었다. 외상분일증. 언어 도착증 (…) 병적부덕증. 병적낭비증……
(p.151)
1934년이란 시간적 배경이 중요한데요. 일제는 1920년대까지 문화통치를 실시하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하며 제국주의 확장 정책을 폈어요. 그러면서 식민지 조선을 더욱 핍박하고 수탈하기 시작했죠. 1932년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어요. 경성을 둘러싼 분위기는 날로 거칠어져 갔죠.
이 소설은 조선인에 대한 억압과 검열이 날로 강화되던 그때 발표됐어요.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감춰야 했는데요. 이 작품이 검열을 통과하는 선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과 반발심을 드러냈다는 의견도 있어요.
예컨대, 경성역과 같은 고유명사를 제외하곤 공식 명칭인 경성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표기한 점, 구보씨가 돌아다닌 곳이 일본인 거주지인 남촌이 아니라 조선인 거주지인 북촌이라는 점, 소설에 일본인이 등장하지 않고, 특히나 당시 가장 번화한 곳이었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는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 등이 조선을 침탈한 일제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일본을 부정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해요.
짠.
여기까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레터였습니다.
‘현재형 어미를 사용해 인물의 내면을 생동감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딱딱한 말속에 가려진, 구보씨의 모습을 복원해보고 싶었는데요.
요상한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손에 공책 하나를 든 구보씨. 그가 어수룩한 얼굴에 조금은 음울한 발걸음으로 경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모습이 그려지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이지만, 저는 이 소설을 읽고 구보씨가 식민지 수도 경성을 살아가는 (어쩌면 구보씨 자신도 포함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을 많은 분께 전달해보고 싶었거든요.
좁은서재는 다음에 좋은 책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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