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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년생 김지영>, 오래된 그리고 익숙한
    LETTER 2020. 1. 7. 20:42

    Vol. 1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많이 들어본 제목이지요? 최근 몇 년간 나온 소설 중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 <82년생 김지영>이에요. 무려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하는데, 2009년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나온 밀리언셀러라고 해요.

     

    출간 후 '1페이지 1울컥'이라고 소문나며 꾸준히 입소문을 탔는데, 이 소설을 금태섭 의원이 전 국회의원에게, 고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 알려져 더욱 유명해졌어요.

     

    폭발적 지지만큼이나 비판도 거셌는데요, 레드벨벳 아이린 씨가 이 소설을 읽었다고 밝힌 이후 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죠. 베스트셀러를 넘어 ‘82년생 김지영 현상'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뜨거운 작품이에요.

     

    영화화가 확정돼, 2019년 후반기에 정유미, 공유 주연의 영화 <82년생 김지영>도 개봉된다고 하니, 그 전에 어떤 소설인지 차근차근 알아보기로 해요!

     


    * 주의: 이 글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기본반 

     

    # 무말랭이 문체의 비밀

    우선, 형식이 독특해요. 국어시간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소설은 ‘기-승-전-결 구조'가 있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야기라고 배웠죠. 그런데 이 소설엔 뚜렷한 기승전결도, 섬세한 묘사도 잘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소설이라기보단 회고록이나 보고서를 읽는 기분이 들곤 하는데요. 바로 그 이질감이 이 작품의 포인트!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행에 전세로 거주한다. 

     (p.9)

     

     

    소설은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 씨의 삶을 쭉 따라가는데요. ‘김지영 씨는 ~~했다’는 식으로 무미건조하게 서술되어 있어요. 아무 영양가 없는 말이긴 하지만, 저는 이런 문체를 무말랭이 문체라고 부르곤 해요. (데헷 🙈)

     

    여튼, 작가가 이렇게 쓴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화자(말하는 이)가 김지영 씨가 아니라, 김지영 씨를 상담한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이 소설은 82년생 김지영 씨를 상담한 한 정신과 의사의 상담일지인 셈이에요. 그러니 무말랭이 문체인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죠? 다만, 문체가 무말랭이라고 해서 글이 안 읽히는 건 아니에요. 보고서 형식이면서도 술술 읽히는 게 이 소설의 미덕이자 매력!

     

    *사실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라는 건 소설 마지막 챕터에 등장하는 반전이에요 (소곤) 

     

    # 소설 한 권 읽었습니다. 독서가 잘 안돼도 좋습니다. 하지만 2015년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소설은 2015년에서 시작해, 김지영 씨가 태어난 1982년부터 2015년까지의 성장과정을 쭈욱 훑고, 2016년, 정신과 의사의 후기로 끝이 나요.

     

    2015년이 무척 중요한 순간인데요, 김지영 씨의 증상이 그해에 시작되기도 했고, ‘그 사건'이 있었던 때도 2015년이기 때문이에요.

     

    작가가 2015년을 콕 찝어 특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럼요. 다들 기억할 거에요. 2015년은 '페미니즘의 원년'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해이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조남주 작가도 이 즈음에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해요. 

     

    # 빙의 혹은 해리성 기억 상실증 혹은

    김지영 씨의 증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빙의'에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남편과 이야기하다 순간 엄마로 빙의해, 남편을 “정서바앙" 하고 부르기도 하고, 남편의 대학교 친구로 빙의하기도 했죠.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p.18)

     

    2015년 추석. 명절 내내 일만 하던 김지영 씨 얼굴에 홍조가 뜨더니, 순식간에 엄마로 빙의해버렸어요. 시무보님과 시가족들 앞에서 말이죠. 장난인지 아닌지 반신반의 하던 남편도 그 순간 일이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되고, 정신과를 찾아가게 되었어요. 

     

    # ‘그 사건'이 알고 싶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된 걸까요? 때는 2015년 여름이에요. 김지영 씨는 어린이집에 맡겼던 딸을 데리고 나와 유모차에 태우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어요.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서요.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김지영 씨. 그때 근처에 있던 직장인의 대화가 어렴풋하게 들려왔어요.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p.164) 

     

    이것이 '그 사건'이에요. 김지영 씨는 '맘충'이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는데요. 단순히 심한 말을 들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모두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는데 그 모든 게 송두리째 부정당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저 말이 더욱 아팠던 거에요.

     

    # 오래된 그리고 익숙한 

    여기서 주의할 점! 그 사건 하나로 김지영 씨가 갑자기 아프게 됐다고 생각하면 오산 중의 경기도 오산이에요.

     

    소설에서도 그날을 결정적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보다 많은 분량은 김지영 씨가 성장하는 내내 겪었던 일들에 할애하고 있거든요. 👶👧👩👵

     

    초등학교 때 짝궁에게 괴롭힘당했던 일, 중학교에서 바바리맨을 잡고도 혼났던 친구들, 고등학교에서 만난 성추행을 일삼는 교사, 대학교 동아리에서 들은 “씹다 버린 껌”이라는 말, 기업 면접에서 당한 성희롱, 직장의 유리천장 등. 은밀하게 때론 적나라하게 작용했던 차별과 혐오(misogyny)가 김지영 씨가 자라는 내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2015년 그 사건은 물방울 하나였던 셈이에요. 물잔엔 이미 슬슬 차오른 물이 아슬아슬하게 있던 상황이고 거기에 물방울 하나가 더해져 넘쳐흐르게 된 것처럼요.

     

     

    2. 심화반

     

    여기까지만 해도 82년생 김지영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 훑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끝내긴 아쉬우니, 기왕 시작한 거,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게요!

     

    # 모래 같은 걸 끼얹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소설의 선명한 특징은 무미건조한 문체인데요. 그 무미건조함에 사하라 사막 모래를 끼얹는 요소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통계입니다.

     

    소설 곳곳에 통계나 보고서를 인용하고, 각주를 달아놓았는데요. 조남주 작가가 <PD수첩>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 출신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는 요소라 할 수 있어요.

     

    소설과 통계라니 참으로 사맞디 아니한 조합이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 소설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일지라는 사실을!

     

    # 너의 목소리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김지영 씨가 빙의된 사람은 모두 김지영 씨 주변의 여자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 여자들은 김지영 씨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하고 있어요.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 줘.”

    (p.12)

     

    언제나 참고 말을 삼켰던(요즘 유행어로 하자면 스피치리스 했던) 김지영 씨가 목소리를 잃자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여성들이 한목소리로 도움을 준 것이에요. 성장기에 맞닥뜨린 여러 차별 속에서도 몇몇 여성들이 도움을 주는 인물로 등장했었죠. 여기서 뽑을 수 있는 키워드는, 역시 연대겠지요.

     

    # 문제는 시스템이야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영'은 80년대 전후 여자아이에게 가장 많이 붙인 이름이라고 해요. 이 소설이 김지영 씨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데요.

     

    소설이 차별과 혐오(misogyny)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의 연대의 이야기라면, 그 속에 혐오를 가하는 가해자도 있을 텐데요. <82년생 김지영>에선 아빠는 못했고, 남편은 잘했고, 시아버지는 못했다 등등 한명 한명 끄집어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 않아요. 

     

    대신 '한국 시스템' 그 자체를 가해자로 지목하죠. 엄마가 겪었던 삶을 김지영 씨가 그대로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차별엔 역사가 있고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가 존재한다고 밝히는 것이죠.

     

    # 상담이 끝나고 난 뒤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요? 끝으로 한가지 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소설의 반전은 ‘화자는 정신과 의사다'라는 점인데요. 저도 읽으면서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

     

    소설 내내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나오다, 마지막 챕터에서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고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이 아주 압권이지요.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p.175)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문장인데요. 스스로 김지영 씨의 처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후임은 미혼을 뽑겠다고 말하는 의사의 모습을 통해, 이 문제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짠!

    지금까지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았어요. 최대한 충실하게 내용과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했는데, 어떤가요?

     

    <82년생 김지영>은 경장편 소설로 그리 길지 않아요. 2-3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분량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읽어보는 걸 권해드려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 대신 읽겠지만, 직접 읽는 것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요!

     

    좁은 서재는 다음에 좋은 책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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