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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LETTER 2020. 1. 12. 14:21
VOL.7
다시, 책으로 / 매리언 울프
“책 좀 읽어라.”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이죠? 어른들은 항상 책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어른들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인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은 하나 같이 책이 중요하다고 했죠. 하지만 독서율은 매년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독서가 부족하다고 답한 비율이 2011년 74%에서 59%로 감소했어요. 책을 읽지 않을뿐 아니라 책읽기를 예전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독서의 위기' 앞에서 많은 이들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데요. 책은 지식의 보고다, 책을 읽어야 생각을 키울 수 있다 등.. 유튜브, 넷플릭스처럼 책보다 재미있는 게 세상에 널렸고, 원하는 자료는 뭐든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는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말하자면, ‘책을 꼭 읽어야해’ 보다 ‘책을 꼭 읽어야해?’ 라는 말이 더 그럴싸한 시대가 됐다는 거지요. 적어도 어린 시절만큼은 아날로그로 보낸 지금의 어른들이 그러하니, 어려부터 일찍 디지털 기기를 접한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겠죠.
‘독서의 위기' 혹은 ‘독서의 몰락'의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으니, 바로 오늘의 책 <다시, 책으로>를 쓴 매리언 울프입니다. 인지신경과학자인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바로 뇌과학입니다.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과학'에서 찾아낸 것이죠.
“책을 꼭 읽어야해?”
이 위태로운 질문에 의미있는 반론을 담은 책, <다시, 책으로>입니다.
1. 기본반
# 어느 사바나에서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 사냥에 성공한 사자 한 마리가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고기를 뜯어 먹고 있습니다. 곧 사자의 식사가 끝나자,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이에나가 등장합니다. 하이에나는 사자가 먹고 남긴 고기를 구석구석 알뜰하게 먹고 떠납니다. 이제 거의 뼈밖에 없는 고기.
그때, 이 사자와 하이에나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동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사냥감에게 다가갑니다. 그의 손에는 주먹도끼가 쥐어져 있습니다.
주변에 맹수가 없다는 걸 확인한 인간, 주먹도끼로 뼛조각을 내리칩니다. 갈라진 틈에서 골수가 흘러나오고, 인간은 그 골수로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 슬픈 운명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버린 지금의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인류는 수십만 년간 이런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다소 비참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문명을 일으키기 전까지 먹이 사슬에서 인간의 위치는 딱 이 정도였습니다. 작은 동물을 잡긴 했지만 그다지 뛰어난 사냥꾼은 아니었고, 맹수들이 먹고 남긴 고기를 차지하는 정도.
힘도 속도도 뛰어나지 않았던 인간은 언제나 주변을 잘 살펴야 했습니다. 맹수들의 공격을 피해야 했고, 혹시 맹수가 사냥에 성공하면 남은 고기를 차지해야 했으니까요. 뜬금없이 무슨 사바나 이야기냐구요?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혹은 읽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에요.
환경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은 생존의 차원에서 중요합니다. 이런 반사신경 덕분에 선사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어렴풋이 찍힌 호랑이 발자국을 보거나 덤불 속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독사의 소리만으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요. (p.117)
우리 뇌의 기본적인 특징들은 이렇게 사냥을 하던 구석기 시대에 형성됐어요. 새로운 자극을 즉각 알아차리고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방향으로요. 그러니까, 뇌는 따분하고 정적인 것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극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어졌고(그게 생존에 유리하니까요), 우리는 정적인 책읽기를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슬픈 이야기에요.
# 우린 안될거야.. 아마..
어려워한다에서 그쳤그면 다행이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인간의 뇌가 읽기를 어려워할 뿐 아니라 배우지 않으면 아예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거에요. 즉, 읽기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거죠.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다른 종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읽기는 우리 인류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더했지요. (p.22)
저자가 이 책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핵심인데요. 예컨대 ‘말하기'는 전담하는 유전자가 있어서 특별한 가르침 없이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읽기는 다르다는 거죠. 읽기는 배워야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행동이라는 거에요.
이 슬픈 사실에서 두가지 교훈을 유추할 수 있어요.
하나. 책 읽기는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니 좌절하지 말자.
둘. 이 ‘특별한' 행동은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정보 과잉 상태에서 우리는 파우스트처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무의식중에라도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문자 그대로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p.124)
#세 줄 요약의 세상
‘세 줄 요약 좀'
온라인에서 자주 목격하는 댓글이죠. 내용이 너무 길어 못 읽겠으니(혹은 귀찮으니) 요약을 해달라는 건데요. 이런 사정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해외에선 긴 글에 이런 댓글이 달린다고 해요.
‘tl;dr(too long; didn’t read)’저자는 지금처럼 읽기를 잃어가면, 읽기로 쌓아올린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요. 우선 읽기를 할 때 우리 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소개해요. 예컨대 단어 하나를 읽는 행위에도 뇌의 다섯 개 층(전뇌, 간뇌, 중뇌, 후뇌와 수뇌)과 좌반구 네 개의 엽(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이 활성화되어 수천, 수만 개의 뉴런이 작동한다는 거
단어 하나를 읽는 과정도 그토록 복잡하니, 책을 읽는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고, 뇌의 수많은 부분을 자극하는 행동이라는 거에요.
실제로 읽는 뇌의 회로 안에는 “은하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연결이 있습니다". (p.64)
2. 심화반
읽기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고, 읽을 때 뇌의 수많은 뉴런이 활성화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뉴런이 활성화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데요?
# 이상하고 신비로운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책에선 흥미로운 논문을 하나 소개하는데요. 논문의 제목은 <제인 오스틴을 읽을 때 당신의 뇌(Your Brain on Jane Austen)>입니다. 연구팀은 대학원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한 그룹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재미'로 읽으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는 ‘집중해서' 읽으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가 소설 한 편을 ‘집중해서’ 읽을 때는 등장인물들의 느낌과 행동에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p.91)
예컨대, 등장인물이 달리기를 하면 운동영역이, 비단을 만지면 촉각과 관련된 영역이, 슬픔을 느끼면 슬픔을 담당하는 영역의 뇌가 활성화되었다는 거에요.
이런 놀라운 결과는, 뇌의 거울 뉴런 덕분인데요. 우리가 소설을 몰입해 읽으면 ‘대리 경험'으로 타인의 관점을 취할 수 있다는 거죠. 이 간접경험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뿐 아니라 사고에도 도움이 되는데요. 독서를 통해 뉴런이 활성화되면 정보를 더욱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능숙한 독서가'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 어쨌든 읽으면 된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단서를 하나 답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아니라 가급적 종이책을 읽으라는 거지요. 그 이유는? 앞서 밝힌 이유와 같습니다. 종이책이 더 몰입이 잘 되기 때문이죠.
그 근거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연구를 소개합니다. 연구진들은 이번에도 학생들을 불러모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재미있는 연애소설을 읽는데, 한 그룹은 킨들로, 다른 그룹은 종이책으로. 결과는? 종이책을 읽은 학생들이 킨들로 읽은 학생들보다 스토리 재구성 능력이 더 뛰어났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혹은 스마트폰) 읽기를 비교한 다른 연구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짧은 글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긴 글에서는 종이책을 읽는 쪽이 훨씬 이해도가 높았죠. 전자책이 책읽기를 방해하는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까요?
답은 우리가 디지털로 읽기를 할 땐 글을 ‘훑어보기' 때문입니다.
안구 운동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디지털로 읽을 때는 흔히 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텍스타상의 ‘단어 스팟(word-spot)’(흔히 스크린의 왼쪽에 있습니다)을 재빨리 훑어 맥락부터 파악한 다음, 맨 끝의 결론으로 돌진했다가, 가끔은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세부 내용을 골라보기 위해 본문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p.125)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우리는 빠른 속도로 제목을 스캔하고, 흥미가 있을 만한 것을 클릭하고 훑어보는 걸 반복합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긴 글을 읽을 때도 천천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지요.
# 양손잡이 뇌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은 마치 ‘나쁜 디지털 vs 착한 아날로그’의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거듭 강조해요. 종이책만 읽던 과거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라구요. 디지털에는 디지털만의 강점이 있기 때문이죠.
긍정적인 면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양육된 젊은이들은 특정 환경에서는 수행력을 잃지 않고도 정보의 다중적인 흐름을 따라 주의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p.176)
아날로그로 자란 세대들은 빠른 속도로 전환되는 업무를 따라가기 버거워했는데,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란 아이들은 업무 전환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었다는 거에요. 디지털 읽기가 우리의 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도 했다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디지털의 장점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잘 결합해 ‘양손잡이 뇌’로 나아가자구요. 책읽기가 우리 뇌에 가져다준 공감력, 비판적 사고, 깊은 생각과 디지털이 가져다줄 속도와 변화를 함께 추구하자구요.
지금은 우리 세대의 전환점입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척도를 취할 결정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문화적, 인지적 교차로에서 현명하게 행동한다면, 찰스 다윈이 우리 종의 미래에 대해 희망한 것처럼, 우리는 ‘끝없는 형태의,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더없이 정교한 읽는 뇌 회로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습니다.
친애하는 좋은 독자 여러분, 천천히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세요. (p.304)
자.
지금까지 <다시, 책으로>의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는데요. 인류 역사에서 보자면, 이와 비슷한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살던 BC 400년경입니다.
놀랍게도 소크라테스는 문자 문화에 우려를 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책보다 말로서 가르치고 배워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인지 소크라테스는 살아생전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죠.
“만약 인간이 이것(글)을 배우면, 이것이 그들의 영혼에 망각을 심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기억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문자에 의존하게 되면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자기 내부에서 가져오는 대신, 외부에 표시해둘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수제자였던 플라톤은 스승의 이런 말을 듣고도, 묵묵히 책을 썼습니다. 후에 우리가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철학자를 알 수 있었던 것도 플라톤이 남긴 책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식을 우리 내부에 두느냐, 외부에 두느냐의 문제인데요.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온전히 우리 내부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플라톤은 책이라는 기록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큰 발전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에요. 지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책이 아니라 디지털에 모든 정보를 보관하는 시대가 온 거구요.
역사적으로 보자면 플라톤의 생각이 옳았고, 디지털을 잘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겠지만, 소크라테스의 이 경고는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사고하지 않으면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을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설명되어 있는 이유에 따르면, 책이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이해 과정을 단락시켜 ‘지혜에 대한 거짓 자만심'을 가진 제자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마사 누스바움좁은서재는 다음에 좋은 책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이만.
당신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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